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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두 번째, 욥에 대한 말씀이시다.

 첫 번에서 가장 기억되는 말씀은 '까닭없이, 어찌하여?'였다.

 욥, 세 친구, 등등의 입장에서 읽어보라는 목사님 말씀대로 다시 읽었다.

'까닭없이, 어찌하여?' 절규하는 욥, 각각의 친구들도 옳은 말을 하는데, 욥에게 적용을 시킨 것이 문제(두려운 것은,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아픔 위에 더 큰 상처를 만들진 않았을까?) 엘리후는 약간 다른 듯.

 그런 상상도 해본다. 아예, 그 고난이 처음 닥쳤을 때 욥이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절규하는 거. 물론, 그리하였다면, 이러한 욥기 쓰여지지 못 했을 테지만, 고난의 정도는 약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말씀, '그 고난을 통하여, 욥은 스스로는 예기치도 못한 기이한 체험들을 하게 된다'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거? 누군가 답답하고 억울한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줄 분을 열망하고, 그 다음 어느 순간, 하늘에서 자신의 증인, 중보자를 보며 하나님을 향해 눈물 흘리는 욥.

 마치 버린 자식처럼 느끼기까지, 하나님의 응답을 갈망하셨던 목사님의 절망 혹은 투지에 새삼 존경의 맘이 더해진다.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으리라. 너무 쉽게 살아온 듯, 반성이 된다.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의미를 투철하게 살펴보지 않고, 축복의 기회를 놓쳤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열망은 그렇게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후, 들려주실 말씀에 대해 늘 기대함으로 기다린다.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