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가 아름답다
“대형”이란 소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말이며, 생활 속에 익숙해 있는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큰 것을 이루려 하다 보니 잃는 것도 많았고, 남 울리는 일도 많아 졌습니다. 없던 욕심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났습니다. 나 외에는 남이라는 인식의 골이 깊어 신뢰하기 보다는 경계해야하는 현실에 봉착했습니다.
사회도, 교회도 이 아픔은 같이 겪어가고 있습니다. 옛 기억을 한번 살려보세요 마을마다 길모퉁이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어 동네의 안녕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사랑방은 어떨까요? 작은일 큰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이면 해결이 나던 웃음꽃피던 작은 방의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 작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큰 것 이루려다 많은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성장위주의 교회관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교회는 심각한 위기가 찾아 왔으며, 가정과 사회에 파괴현상을 가져왔으며 작금에 와서는 해결 할 방법은 손도 못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든, 교회든, 성장 일변도는 남 죽이는 병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교회 위주의 성장은 목회자의 교회관을 바꾸어 놓았고, 목회철학의 부재현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인들의 신앙정신을 타락시켰습니다. 편리주의와 안일주의에 깊이 빠져들게 하여, 도무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까이 두기를 꺼려하는 그리스도와 동떨어진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갑니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편법을 써가며 교인들의 눈을 속여 보려고 안간힘을 써 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이웃 교회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고, 내 교회만 커 가면 그만이란 식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우리 모두의 자멸을 앞당길 뿐입니다.
또 한 가지를 더 든다면, 작은 교회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사역을 공생애 마지막에 다락방에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속사역을 다락방에서 마무리 하시면서 앞으로 세워질 교회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 자리는 떡과 잔이 있었고, 이 작은 공동체가 교회가 세워지는 기독교 생명의 요람이 되었고, 제자훈련의 신비한 장소가 되었으며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곳에서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고, 성만찬이 이루어졌으며, 부활하시어 제자들과 만난 곳도 이 작은 다락방, 제자들이 이곳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매 초대교회가 탄생된 곳도 바로 이 작은 교회였습니다. 작은 시계는 정밀감이 있고 큰 시계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작은 교회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가시적 성장목표를 지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진정한 일이 목회적 정열을 외형성장에만 쏟고 있다면! 교회의 관심이 많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웃을 많이 초청하여 수를 팽창시키는데 있다면! 교회는 타락한 것입니다. 결국 많이 모이면 최고의 교회로 생각하고, 대외적으로 많은 사업을 하면, 큰 성공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 교회의 모습이라면 교회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될 수 없습니다. 이젠 이 교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목회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에 변질된 관심을 가지고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작은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제자화 과정의 목표를 오늘날 교회들은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작은 교회는 그의 인격과, 그의 삶을 통한 복음제시를 생명으로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게 하는데 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격변화의 목표를 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적인 관심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자기를 희생 하는 것으로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방법은 자기희생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작은 교회는 성장을 추구하는 데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는 것이었습니다. 곧 개개인을 작은 불꽃 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실 때 패역한 내가 변화되어 세상을 살리는 재목으로 일어나기를 바라심입니다. 각 시대의 저장들이 몰락해져가던 사회에 부흥의 불을 지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작은 불꽃, 작은 교회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삶이되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빛과 소금되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지성으로 감당하는 작은 불꽃 된 공동체, 아름다운 작은 교회를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 부름 받은 자는 이 작은 불을 지피기 위해, 먼저 자기희생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인을 위하여 죽으라고 세움 받았다는 사명감이 분명해야합니다. 요10:11에 목회자는 양을 위하여 죽는 사람입니다. 선한 목자는 결국 양들을 위하여 자기 살과 피를 내어 놓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새끼들에게 자기 몸을 다 먹이고 나중에는 빈껍데기만을 남기고 죽는 어미 거미처럼 목회자는 교인들을 위해 자기를 비우고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목자의 신비가 예수님의 작은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울러 성도의 지향할 목표를 바로 정립시켜주어 예수님 제자 된 교회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써 인간을 섬기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작은 교회(다락방)에서 성찬을 나눴던 제자들은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갔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할 교회는 분명해 졌습니다. 작은 교회를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작은 교회되어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함으로 이 땅에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들어나 병든 사회 구원하고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밥상 공동체로 거듭났던 것처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며 보살피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 줄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행2:1-2, 2:42-47)
예수님은 작은 교회 성찬을 통하여 하늘 생명을 서로 나누어 먹는 밥상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대 교회 지향의 덫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족애로 뭉쳐진 서로가 서로의 우환질고를 공유하는 영성으로 작은 교회의 뿌리가 내려져 “초대교회의 가정 같은 교회를 교회 같은 가정을” 이 땅에 정착시켜 바른 교회 정립에 작은 불씨 되어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건강한 한민족으로 거듭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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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을 읽고나니 목회자인 제가 너무 너무 부끄럽고, ---------